[1회]
만물을 창조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
[2회]
과학은 성경을 기초로 한 것이다
[3회]
성경의 사실을 밝히는 과학 (상)
[4회]
성경의 사실을 밝히는 과학 (하)
[5회]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신성
[6회]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7회]
물과 생명 1
[8회]
물과 생명 2
[9회]
물과 생명 3
[10회]
물과 생명 4
[11회]
흙과 생명 1
[12회]
흙과 생명 2
[13회]
흙과 생명 3
[14회]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나이다
[15회]
생명, 그 아름다움의 근원
[16회]
천지의 규례를 응용한 유전공학
[17회]
비와 번개와 나무들
[18회]
태양계_1
[19회]
태양계_2
[20회]
태양
[21회]
[22회]
우주 공간 속의 지구
[23회]
지구의 내부
[24회]
지구의 주위
[25회]
땅 위의 생활
[26회]
바닷 속 생활
[27회]
지구 자전과 공전의 증명
[28회]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의 발견
[29회]
언어와 민족의 기원
[30회]
노화(老化) 현상의 근원을 찾아서
[31회]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32회]
무한한 창조자(하나님),
유한한 우주
[33회]
하나님의 말씀은 에너지,
에너지는 곧 능력
[34회]
빛과 생명
[35회]
성경은 과학에 위배되는가?_1
[36회]
성경은 과학에 위배되는가?_2
[37회]
진화냐 창조냐
[38회]
태양열과 빛
[39회]
성경과 원자력
[40회]
원은 닫히는가
[41회]
인간의 뇌와 컴퓨터
 
성경과 과학 :: [27회] 지구 자전과 공전의 증명
 

우리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믿게 된 것은 긴 인류 역사와 비교하면 아주 최근의 일이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1543년에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를 발표하고 나서도 10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서양인들이 비로소 지구가 그 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태양주위를 일년에 한 번 회전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고 하는 지구 중심체계를 굳게 믿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서양의 지구 중심 체계는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 싹튼,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생각이 발전된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체계화되어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달, 태양, 행성, 항성들은 모두 주구 주위를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는 매우 정교한 우주 체계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때에도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6세기에 피타고라스 학파의 필롤라오스 같은 사람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놓여 있는 불덩이 주위를 1년만에 한 바퀴씩 돌면서 동시에 하루에 한 번 자전하다고 생각했으며, 기원전 4세기 말에 헤라클레이데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지만 자전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아리스타르코스(기원전 3세기)는 태양이 우주 중심이며 지구는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할 뿐만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매우 근대적인 생각을 내놓았다. 이때 이미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와 비슷한 우주 체계가 나왔던 것이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 중심체계는 별들의 일주운동 (一周運動)과 태양의 연주운동(年周運動)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지만, 신데 대한 불경(不儆)이 라는 종교적인 이유와 물리적인 이유로 거부당하고 말았다. 물리적인 이유는 수직으로 던진 돌이 항상 그 자리에 떨어진다는 것과, 지구에서 별을 관측할 때 그 위치는 일년 중 언제 관측하더라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일 지구가 자전한다면 돌이 올라갔다가 내려올 동안 지구는 움직였을 터이니까 돌은 뒤쪽으로 가서 떨어져야 할 것이고, 지구가 공전한다면 지구의 위치에 따라 별의위치가 다르게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리스타르코스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지구상의 물체는 모두 지구와 함께 돈다고 배웠고 별이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위의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한 반박이 타당하지 않는다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그러한 비판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타르코스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따라서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체계를 내놓을 때가지 거의 2000년 동안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양에서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한창일 무렵인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타르코스 이래 처음으로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돌고 있다는 생각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때 유럽에서는 일반 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천문학자 중에서도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러한 생각을 공개적으로 가르친다거나 옳다고 옹호하는 사람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기독교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이 학문세계에 드리우고 있던 짙은 그림자가 그때까지도 걷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17세기 초 케플러(1570~1630)가 타코브라헤(1546~1601)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행성의 움직임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을 발표하고, 1610년 갈릴레이(1564~1642)가 망원경을 가지고 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차고 기움을 발견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17세기 중엽까지도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대체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지만 내행성(수성과 금성)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하는 티코 브라헤의 타협적인 우주체계를 믿고 있었다.(티코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장점을 알고 있었지만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주장은 기독교 신앙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뒤섞은 타협적인 우주체계를 내놓았던 것이다. 갈릴레이 재판 후 로마교회의 눈치를 보면서 기독교 신앙에 들어맞는 우주 체계를 원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티코의 체계를 받아들였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결국 17세기 말경 뉴턴(1642~1727)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사용해서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증명함에 따라 그 길고도 긴 수명을 마감하고 말았다. 뉴턴과 케플러의 법칙은 지구가 돈다는 이론이 옳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입증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경험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었다. 경험적 증거로서는 갈릴레이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상변화(相變化)가 있었지만, 이것들은 모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만 보여줄 뿐이었다. (금성의 상변화가 있다는 것은 금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증거이긴 하지만, 티코 브라헤의 우주체계로도 설명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증거가 없었음에도 불고하고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체계를 발표한 지 300년이나 지난 다음에야 증명되었다. 지구의 자전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푸코(Jean Bernard Leon Foucault, 1819~1868)가 1851년 거대한 진자의 진동면이 지구의 자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증명했고, 공전은 1838년 독일 전문학자 베쎌(Friedrich Wilhelm bessel, 1784~1864)이 별의 연주시차를 확인함으로써 마침내 입증할 수 있었다. 푸코는 1847년 시계추가 주의 지지대가 움직이더라도 처음의 진동면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는 이 현상을 이용해서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려는 기발한 착상을 했다. 즉 진동면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지구가 돌 경우 진자는 지구 자전 방향과 반대 방향 즉 하늘이 도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집의 천정에다 길이 2미터 추의 무게가 5킬로그램이나 되고 어느 방향으로도 진동할 수 있는 진자를 매달아 진동시키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바와 같았다. 1851년 1월 8일 오전 2시 푸코는 진동면이 하늘의 일주 운동과 같은 방향으로 서서히 회전하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시차(視差, parallax)란 관찰자의 위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관찰 대상의 방향 차이를 말한다. 우리는 달의 시차도 관찰할 수 있으며, 이것을 이용하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별의 시차는 지구가 공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를 들어서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먼 점(원일점)에 있을 때와 가장 가까운 점(근일점)에 있을 때 지구에서 본 별의 방향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별의 시차에 대한 확인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받아들여진 후 지구 공전을 근본적으로 증명하려는 천문학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시도되어 왔지만 실패를 거듭하다가 1851년 베쎌에 위해서 비로소 해결이 되었다. 베쎌은 천문학 교육은 조금도 받지 않았고, 원래 상인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국제 교역에 흥미가 있어서 항해술을 공부하다가 항해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천문학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곧 혼자서 수학과 천문학 공부를 시작했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훌륭한 천문학자로 인정받을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1809년에 베쎌은 프러시아 왕 프리드리히 3세의 명을 받아 쾨니히스베르크의 천문대장 직을 맡았는데 이 곳에서 죽을 때까지 그는 많은 천문학 업적을 남겼다.

베쎌은 처음에 공전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와 별 사이의 거리를 최초로 결정하겠다는 생각에서 별의 시차를 측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베쎌은 우선 측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구에서 가까우면서도 비교적 밝은 별을 찾았다. 그 결과 그는 이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61시그니(Cygni)란 별을 관측 대상으로 정하고, 이 별로부터 약 10′(각을 말함_ 정도 떨어진 두개의 별을 기준별 - 매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시차가 관측되지 않는 고정된 별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 별에 대한 61 시그니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시차를 결정할 수 있다. - 로 정했다. 그 후 그는 18개월 동안 관측한 끝에 1838년 천문학사상 최초로 시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관측 결과 나온 시차는 0.314′′였고, 이 값을 기초로 계산된 지구와 61 시그니 사이의 거리는 지구 반지름의 6.9×105 또는 10.9광년이었다.

우리는 현재 지구가 자신의 측을 중심으로 돌고 있고 동시에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나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코페르니쿠스 이래 많은 천문학자들의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와 관측 끝에 궁극적으로 입증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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