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만물을 창조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
[2회]
과학은 성경을 기초로 한 것이다
[3회]
성경의 사실을 밝히는 과학 (상)
[4회]
성경의 사실을 밝히는 과학 (하)
[5회]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신성
[6회]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7회]
물과 생명 1
[8회]
물과 생명 2
[9회]
물과 생명 3
[10회]
물과 생명 4
[11회]
흙과 생명 1
[12회]
흙과 생명 2
[13회]
흙과 생명 3
[14회]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나이다
[15회]
생명, 그 아름다움의 근원
[16회]
천지의 규례를 응용한 유전공학
[17회]
비와 번개와 나무들
[18회]
태양계_1
[19회]
태양계_2
[20회]
태양
[21회]
[22회]
우주 공간 속의 지구
[23회]
지구의 내부
[24회]
지구의 주위
[25회]
땅 위의 생활
[26회]
바닷 속 생활
[27회]
지구 자전과 공전의 증명
[28회]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의 발견
[29회]
언어와 민족의 기원
[30회]
노화(老化) 현상의 근원을 찾아서
[31회]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32회]
무한한 창조자(하나님),
유한한 우주
[33회]
하나님의 말씀은 에너지,
에너지는 곧 능력
[34회]
빛과 생명
[35회]
성경은 과학에 위배되는가?_1
[36회]
성경은 과학에 위배되는가?_2
[37회]
진화냐 창조냐
[38회]
태양열과 빛
[39회]
성경과 원자력
[40회]
원은 닫히는가
[41회]
인간의 뇌와 컴퓨터
 
성경과 과학 :: [4회] 성경의 사실을 밝히는 과학 (하)
 

하나님의 말씀은 에너지



태양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에너지를 알아보자.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수소가스에 만유인력(중력)이 작용하여 수소를 한 곳으로 모이게 한 것이 태양인데, 그 중심부는 약 4천억 기압(중심부의 수소 밀도는 88)이라는 엄청난 압력 때문에 온도가 섭씨 2천만 도나 된다(중력→압력→열).
이와 같은 높은 압력과 온도는 수소 기체를 헬륨 기체로 바꾸면서 엄청난 빛과 열을 발생한다.(이것이 바로 핵융합으로서 수소폭탄의 원리이다)

이렇게 해서 태양에서는 X광선에서 라디오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파장의 여러 가지 빛이 방출되는데, 이 중에서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제외한 자외선이나 우주선(프라스마 등) 등은 생명체에 유독한 빛이므로 지구 표면에 도달하기 전에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욥 38 : 9-11)

다행스럽게도 욥기에 기록된 “강보”, 즉 오존층과 반알렌 벨트라는 방사능 벨트에 의해서 유해한 자외선과 우주선들이 모두 차단되므로 지구상이 모든 생명체가 보호를 받고 있다.

인간의 연약함 중의 하나는 태양에너지를 직접 취하여 육체 활동에 이용하지 못하고 반드시 식물이나 동물을 통해서만 에너지를 얻는 데에 있지 않을까?

만유를 붙들고 있는 힘은 곧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다(히 1 : 3), 이렇게 우주(우주 = 시간 + 공간)의 모든 공간(공간 = 물질과 빛이 존재하는 곳)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 존재한다.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 : 19)

하나님을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임하신 성부, 특히 인간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갖은 곤욕을 치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과, 그 후부터 지금까지 세상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회의를 느껴왔다.

그러면 이제 삼위일체를 우리들의 자연현상 속에서 한번 관찰해 보자.
우리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통해서 창조자의 능력과 실존을 이해하고 그를 경외하게 된다. 지구상의 생명과 가장 관계가 깊은 물의 역할과 삼위일체를 비교해 보면 삼위일체의 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은 온도의 변화에 따라 세 가지의 중요한 형태(Phase)를 갖는다. 즉 구름이나 수증기 같은 기체상태, 물의 형태인 액체상태, 그리고 온도가 내려가면 얼어붙은 얼음이나 눈과 같은 고체 상태의 세 가지 다른 물리적 집합 형태를 갖는다.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 집합 형태의 상호변환은 지구상의 각 계(System)의 에너지 균형을 조정함으로써 자연계의 질서 및 균형을 이루어 주고 동시에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의 생명을 보호,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각의 상이 자연 중에서 하는 일이 모두 서로 다르고 대단히 독특하다. 하지만 물이라는 속성은 변화하지 않고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 : 13)

이와 같이 성부의 시대는 말씀의 시대로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창조의 뜻을 전해 주었고, 성자인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잠시 인간의 육체를 빌어서 우리에게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 박힘과 부활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증명하여 주셨으며, 오순절에 내린 성령은 오늘날까지 교회를 통해서 창조자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물의 역할이 그 형태에 따라서 다르듯이 성부?성자?성령이 하나이지만 그 역할이 시공간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것은, 그 논리가 정연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경의 역사성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육체

이러한 끊임없는 에너지의 공급에 의해서 그 생존이 가능한 인간의 육체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3 : 19)



인간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 지구상에는 수소(원자번호 1)에서부터 우라늄(원자번호 92)까지 92가지의 원소가 서로 결합하며 흙이라는 모양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육체는 이 중에서 수소, 산소, 질소, 탄소를 포함하는 24종류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조직은 너무나 복잡해서 현대 과학을 총동원해도 극히 일부밖에 설명할 수 없다.

지역에 따라서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고, 앓는 병의 종류도 다르며 특히 지역 고유의 향토병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은 그 지역의 흙의 성분이 서로 달라서 인체 내 필요한 24가지의 원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식물을 통해서 흙에서 섭취하는 원소는 인간에게 필요한 24종류의 원소이고 나머지 원소는 인간의 육체 밖에서 직접, 간접으로 인간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의 형태로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때 그 육체는 분해되어(썩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창 3 : 19) .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흙에 속한 것이다. 인간 역시 흙으로 지음을 받았고, 흙(집) 속에서 흙을 먹으며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그러면 흙으로 지음을 받은 식물,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생물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생물을 식물과 동물로 구분해 왔다.

그리고 동물 중에서 인간은 사고(생각)하는 동물(인간 = 육체 + 혼)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정말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이것밖에 없을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좀더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면 이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일까?

‘생각(혹은 정신)'이란 비물질적인 차원에 속하며, 경계도 없고 또 고정된 한계도 없다. 정신 세계에 대한 물질 세계의 관계는, 전체에 대한 아주 작은 부분과 같다.
그런데 이렇게 경계도 한계도 없는 인간의 생각은, 한정된 아주 작은 육체 속에 그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이 작은 육체가 추구하는 것에 한정되기 쉽다.
즉 인간의 생각은 훨씬 큰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작은 육체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그래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육체의 욕구와 그 욕구를 제어하려는 양심의 틈바구니에서 갈등을 겪으며 한평생을 살아간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양심이 있으며, 미래(더 나아가서 영원)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 이는 사람에게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육체와 혼 이외에 또 하나의 속성인 ‘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히브리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인간에게는 육과 혼 외에도 영 (Spirit) 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인간 = 육 + 혼 + 영)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 : 12)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 : 23)

사실상 원시인이나 근대인, 무신론자나 유신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사후에 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생각 내지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전도서 3장 15절 에 나타나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이 곧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일 것이다.
영원을 사모하는 영(Spirit)과 자유(Liberty)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간의 양심 속에 있는 완전한 자유, 곧 시공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양심의 자유는 영의 속성으로서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며, 이것만이 영원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양심의 자유는 어떤 국가나 사회, 금전이나 권력에 의해서 얻어지거나 짓밟힐 수 있는 자유가 아니고, 오직 무한한 능력의 창조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 : 27-28)

하나님의 형상(Spirit)으로 창조되었으나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단절되었던 선한 양심(영)을 다시 찾고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얻는 것이 인간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료를 공급하는 하나님의 능력



식물이 자라는 데는 3가지의 원소 즉 질소(N), 인(P), 칼륨(K)이 꼭 필요한데 그 중에서도 식물 성장에는 질소성분이 가장 중요한 원소이다.
어떤 흙 속에는 질소 성분이 전혀 없는데도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고, 특히 높은 산 바위 틈에 자라는 식물은 질소 성분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자라는 것일까?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리라” (욥 36 : 30-31)

욥기에 기록된 대로 비오는 날의 번개가 질소 비료를 공급하는 것이다. 번개가 칠 때 30만 볼트 이상의 전압하에서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가 방전에 의해서 산화질소(NO)가 되고 이것이 비에 섞여서 식물 성장에 필요한 질소 비료를 공급하는데, 번개는 세계적으로 초당 100번 정도 치는 것으로, 연간 30억 번의 번개가 치는 셈인데 이 번개에 의해서 생성된 질소 성분이 지구상의 식물이 필요한 질소량의 약 반을 공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번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얼마나 과학적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는?

그러면 지구상에서 인간의 영원한 생존은 가능한 것일까? 물리학에서 최대의 신비는 중력과 빛인데, 190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의해서 이 빛의 신비가 벗겨지면서 발생된 우리 인류의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가!

이 엄청난 빛의 신비는 대량 살상 무기인 수소 폭탄과 원자 폭탄을 생산함으로써, 인류에게 복지 대신에 대량 학살이라는 무서운 핵전쟁의 위험을 안겨 주었다. 인간을 위한 과학이 전 인류의 떼죽음을 부르다니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무서운 핵전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간이 이러한 핵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땅(바위) 속 깊숙이 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이미 계획하고 있는 미국의 우주비행 계획같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서 외계로 나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2천 5백 년 전에 오바댜를 통해서 오늘날의과학과 인류의 장래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라” (욥 1 : 3-4)

고도로 발달된 과학에 의해서도 인간의 영원한 생존은 결코 보장될 수 없으며 우주의 어느 공간에도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오직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 길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길뿐이다(요 17 : 3).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기의 계획을 인류에게 보여 주고 있으며 역사적,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실존을 증명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기계 문명 속에서도 완전한 평화와 안전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고 목말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상에는 자그마치 45억의 인구 각각에게 3억 7천만 톤 이상씩 배당될 만큼 많은 물이 있다. 그런데 이 많은 물로도 인간 육체의 영원한 해갈을 면할 수 없음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 : 14)

창조자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계 22 : 17) 를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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